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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마요

4개월 만에 VRE 내성균에서 벗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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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했던 마지막 여행지는 제주도였다. 아빠가 아프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였을까..
아빠와 함께했던 마지막 여행지는 제주도였다. 아빠가 아프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였을까..

 

 

 


 

 

아빠를 죽음의 문턱까지 몰아넣었던 흡인성 폐렴이란 무서운 병을 마주한 순간부터..

아빠의 몸엔 끊임없이 항생제가 투여되었다.

 

 

항생제의 두 얼굴.

나쁜 균을 죽여 기적처럼 다시 살려주기도 하지만, 더 강한 균이 살아남아 또다시 죽음의 문턱으로 몰아넣는...

항생제 덕에 폐렴균은 없어지고 있었지만, 또 다른 균이 더 강해져서 아빠를 괴롭히고 있었다.

끝도 없는 균과의 전쟁이다.

 

 

 

의료진이 어두운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건넸다.

VRE라는 내성균이 검출되어 재활도 중단되고 격리실로 가야 한다고..

눈앞이 캄캄해지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겨우 한걸음 발을 떼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

 '내성균'이란 이름으로 항생제가 통하지 않는 순간이 결국 다가왔다.

 

다제내성균이라 불리는 VRE를 비롯한 CRE, MRSA, VRSA, MRPA, MRAB은 항생제 내성을 가진 세균으로 주로 의료 환경에서 많이 발생하며, 면역력이 저하되거나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한 환자, 중환자실 환자, 광범위한 항생제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주요 위험군이다.  감염된 환자와의 접촉이나 오염된 의료기구, 의료진의 손을 통한 간접 전파 등이 중요한 감염 경로가 되기 때문에 격리, 철저한 소독과 위생이 중요하다.

아빠의 경우에도 항생제 과다사용과 중환자실 입원, 병원 내에서 오다가다 만나는 감염 환자와의 접촉, 병원균이 가득한

환경이 원인이 되어 내성균에 노출된 것이다.

 

 

 

내성균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도 아주 제한적이라는 의료진의 말이 너무 무섭다.

이러다 사용할 수 있는 약조차 없어지는 건 아닌지.. 그렇게 무너져 아빠가 돌아가시는 건 아닌지...

미래를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모든 것이 다시 멈춰지고 원점으로 돌아온 상황이 너무 처참하다.

 

 

의료 지식이 전혀 없는 나는 휴대폰으로 무작정 검색을 시작했다.

내성균이 무엇인지,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내성균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아빠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답을 찾기 위해 끝없이 정보를 얻고자 했다.

 

사실 정답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환자의 면역력이 좋아져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선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그래도 현재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기로 한다.

 

 

 

VRE 내성균 검사는 항문으로 면봉같이 생긴 시험 도구를 살짝 넣어 체액 샘플을 채취하여 배양을 한다.

그 결과가 연속 3회 음성이 나와야 내성균 해제가 된다.

만약 중간에 양성이 나오면 다시 처음부터 연속 3회 음성이 나와야만 해제가 될 수 있다.

 

 

재활을 위해 입원했던 상황인데..

재활이 중단되고 격리실로 이동을 하게 되면서 사실상 병원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어느 정도 응급 상황은 넘어갔고 재활의학과에서 입원 가능한 기간이 다 되어가니,

빨리 요양병원이나 재활병원 등으로 전원 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또한, 완벽하게 통제되지 않는 현재의 의료 환경에서는 내성균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격리실임에도 간병인 분들의 모임 공간이 되거나, 감염 환자를 직접 접촉한 의료진이 소독 없이 다른 환자를 바로 돌보는 상황 등 이론적인 완벽한 통제는 힘들었다.) 

 

 

 

결국 아빠는 퇴원 이후 가정 간병을 통해 노력한 결과, 4개월 만에 내성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특별한 건 없었지만 내성균에서 좀 더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

매일 아빠를 씻기고, 입고 있는 옷과 사용한 수건 등은 바로 세탁했고, 아빠와 접촉하는 손은 늘 깨끗하게 씻고 소독했다.

의사는 효과가 없다고 했지만 초유 파우더와 유산균을 챙겼고, 간단한 스트레칭이라도 하면서 움직이게 하려고 애썼다.

내성균 검사는 외래에 갈 때나 가정 간호를 통해 수시로 요청해서 시도하였다.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아빠의 내성균이 다른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치는지가 궁금했었는데,

교수님께 여쭤보니 건강한 면역력을 가진 사람은 내성균에 노출되어도 큰 영향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가정 간병을 하면서 특별히 비닐 보호복을 입지 않았고 빨래도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다만, 면역력이 떨어진 아빠를 위해 가족 외에는 외부인이 접촉할 수 없도록 하고,

아빠가 주로 누워있는 방과 사용하는 욕실은 아빠 혼자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위생에 힘썼다.

 

 

 

 

 

내성균에서 좀 더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

매일 아빠를 씻기고,
입고 있는 옷과 사용한 수건 등은 바로 세탁했고,
아빠와 접촉하는 나의 손은 늘 깨끗하게 씻고 소독했다.
의사는 효과가 없다고 했지만 초유 파우더와 유산균을 챙겼고,
간단한 스트레칭이라도 하면서 움직이게 하려고 애썼다.

 

 

 

 

 

 

 

긴 시간 동안 기약도 없이 마음이 초조했지만,

매일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면역력이 좋아지면서 VRE 내성균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성균 최종 음성 판정을 받던 날은 너무 신이 나고 좋았다.

병이 나은 것도 아니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가득하였지만,

그저 이제 본격적인 재활을 시작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이 기쁘고 행복했다.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다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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