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안 보이는 간병 생활이 계속 이어진다.
아빠는 퇴원하고 집에 오셔서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되었다.
아직은 저 단전 아래부터 올라오는 기침과 가래가 아빠를 괴롭히고 있지만,
그래도 움직임이 제법 많아지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시게 되었다.
지금은 밤에 깨지 않고 잘 주무시는 것만으로도 참 다행이다.
조금 이른 새벽 5시.
경관식 피딩을 위해 불을 켜고 아빠의 상태를 살펴본다.
어쩐지 오늘은 잘생겨 보이기도 하고 너무나 편안한 모습으로 새근새근 잘 주무신다.
미소를 짓던 찰나..... 아뿔싸...
코에서 콧줄이 안 보인다.
"아빠!!!!!!!!!!!!!!!!!!!!!!!!!!!!!!"
밤사이 언제, 또 어떻게 그 긴 콧줄을 뽑았는지 뽑아놓은 콧줄은 손 아래 가지런히 잘 놓아두고
본인은 너무나 편안하고 시원한 표정으로 주무시고 계셨다.
깜짝 놀라 소리 지르는 내 목소리에 아빠도 눈을 떴다.
아빠는 콧줄을 뽑았다고 잔소리를 하는 나를 보며 잠이 덜 깬 표정으로 눈만 껌뻑껌뻑 거린다.
'얼마나 아팠으면 무의식 중에 콧줄을 뽑았을까....'
아빠의 그 마음을 너무나 이해하기에 안쓰럽기도 하고..
다시 병원에 가서 콧줄을 씨는 모습을 봐야 할 생각에 또 엄청난 스트레스가 몰려온다.
"이걸 빼면 밥도 못 먹고 약도 못 먹는데 어떡할 거야!"
"미안해."
아빠는 살이 빠져 볼이 푹 파진 얼굴로 약간 울먹거린다.
잠결에 답답함을 느껴 뽑은 듯했다.
그나저나 당장 콧줄이 없어 식사와 약을 먹을 수가 없으니 정말 큰일이다.
가뜩이나 폐렴을 앓고 나서 너무 살이 빠져 걱정인데... 또 굶게 생겼다.
이렇게 갑자기 콧줄이 빠지면 어쩔 수 없이 응급실로 가야 한다.
외래를 볼 수 있는 시간이더라도 사실 대학병원의 당일 외래를 잡는 건 쉽지 않다.
어쩌다 당일 외래를 잡더라도 기나긴 대기 속에 기다림에 지쳐 쓰러진다.
아무튼 일은 벌어졌다.
조금이라도 빨리 응급실로 가야 한다.
그래야 한 끼라도 덜 굶고 영양 보충을 할 수 있다.
응급실에 응급 환자가 없길 바라며, 아빠의 옷을 갈아입히고 휠체어를 준비한다.
어찌어찌 거동 불편한 아빠를 이끌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아빠를 차에 앉히고,
나는 서둘러 휠체어를 접어 차에 실은 후 운전대에 앉았다.
시동을 켜고 옆에 앉은 아빠를 보니 또 곤히 잠이 드셨다.
콧줄을 빼니 정말 편했나 보다.
코끝이 시큰해진다.
주차장에서 밖으로 나오니 아직은 어둑어둑한 아침이다.
병원으로 향하는 내 마음이 참 슬프다.
'언제까지 콧줄을 끼고 살아야 할까... 입으로 밥은 먹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응급실에 도착했다.
접수를 하고 기다리니 의료진이 이것저것 상태를 묻는다.
또 콧줄을 뽑았냐는 식의 눈총에 잘 살펴보지 못한 보호자로서의 죄책감이 몰려온다.
아빠가 누울 수 있는 침상으로 안내해 주셔서 이동을 했다.
당시 아빠는 VRE 내성균이 있는 상태여서 침대 모서리에 '접촉주의'라는 푯말이 붙었다.
모든 의료진이 비닐옷을 입고 다가왔다.
다행히 응급환자가 없어 바로 콧줄 삽입을 할 준비를 해주신다.
워낙 가래가 많고 이로 인해 산소포화도가 들쑥날쑥하던 때라 석션기와 산소도 준비해 주셨다.
아빠가 사용했던 콧줄 사이즈는 14Fr 또는 16Fr 사이즈였는데, 간혹 응급실에서는 해당 사이즈가 없는 경우가 있었다.
사이즈가 클수록 굵어서 빳빳하기 때문에 넣는 입장에서는 편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환자는 매우 고통스럽다.
한 번은 16Fr 사이즈로 시도하다가 하도 안 들어가서 보통 이렇게 얇은 건 안 쓴다며..
18Fr 사이즈로 넣겠다고 하셔서 알았다고 했는데...
넣고 난 이후에 아빠를 보니 이건 뭐 코끼리도 아니고 너무 아파 보였다.
그 이후로는 혹시 몰라 14Fr, 16Fr 사이즈의 콧줄을 따로 구입하여 콧줄이 빠졌을 때 같이 응급실에 들고 가기도 했다.
"환자분. 꿀꺽~ 해보세요. 꿀꺽~~"
콧줄에 젤을 발라 넣었다 뺐다 하니 아빠는 연신 콜록콜록 기침을 하고 눈물도 흘리고 난리도 아니다.
꿀꺽을 잘했으면 벌써 밥을 먹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들어간 듯싶어서 살펴보면 입 안에서 말려있기도 하고,
들어가겠다 싶어서 막 넣다 보면 가래가 미친 듯이 끓어 산소포화도가 훅 떨어지기도 했다.
코 안이 얼마나 아플까.. 경험하지 못한 일이지만 상상만으로도 힘들다.
그렇게 긴 시간을 시도한 끝에 콧줄을 넣었다.
청진기로 소리를 들으니 잘 들린다고 하셨다.
(빈 주사기로 공기를 넣어가며 청진기로 소리를 들었을 때, 꼬르륵 소리가 나면 잘 들어간 것이다.)
바로 이어서 엑스레이 검사를 진행한다.
콧줄이 제 위치로 들어갔는지 엑스레이 검사를 해야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엑스레이 검사상으로도 잘 들어갔다고 하셨다.
아빠는 콧줄 때문에 답답해졌는지 화가 잔뜩 나있다.
당장이라도 빼주고 싶지만, 폐렴이 재발하면 정말 위험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뱃줄을 한번 고려해보셔야 할 것 같아요 콧줄 끼우는 게 쉽지 않네요."
퇴원하면 금방 식사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회복이 더뎠다.
그래도 오늘은 이 정도여서 다행이다.
지난번 재활의학과 외래에서 콧줄을 끼울 땐 4시간이 걸리도록 끼우질 못해서 아빠는 거의 실신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어떤 날은 어렵게 콧줄을 끼우고 집에 왔는데, 아빠가 주차장에서 쓰러져 119를 타고 다시 응급실에 간 적도 있었다.
아예 끼우질 못해 결국 소화기내과에서 내시경을 통해 끼운 날도 있었다.
쉬운 시술 같지만, 결코 쉽지 않은... 그리고 권하고 싶지 않은 시술 중에 하나이다.
비용은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외래나 가정간호로 끼울 땐 몇천 원,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끼울 땐 몇만 원,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에서 끼울 땐 십몇만원 등.. 상황에 따라 의사의 판단에 따라 많이 달랐다.
콧줄 교체주기는 보통 한 달인데, 그 안에 이런 사고가 생기면 바로 응급실로 와야 했기에 교체 비용도 사실 만만치 않았다.
이래도 저래도 좋으니, 아빠와 같이 식탁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는 행복이 참 크다는 걸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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