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특별하게 가리는 음식이 없었다.
김치만 있어도 보는 사람이 배가 고파질 정도로 복스럽고 맛있게 잘 드셨다.
평생 반찬 투정 한번 안 하고 밥시간이 늦어진다고 보챈 적도 없었다.
완전 순둥이였다.
아빠가 갑자기 입원하게 되면서 가장 속상한 일은 바로 콧줄을 끼게 된 것이다.
비위관 또는 L튜브라고 불리기도 하는 콧줄의 시술은 연하장애가 있어 입으로 안전하게
음식물을 섭취하기 어려운 환자에게 시행한다.
아빠는 연하장애가 생겨 흡인성 폐렴에 걸렸고, 입으로 음식물을 섭취할 경우
폐렴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 콧줄을 끼게 되었다.
이 때문에 콧줄을 통해 넣는 유동식 외에는 음식물을 섭취할 수가 없었다.
매 식사시간마다 다른 환자분들에게는 맛있는 식사가 제공되는데,
아빠에게는 캔으로 된 유동식과 피딩백, 피팅줄만 제공되었다.
입으로 음식을 섭취할 수 있는 다른 환자분들이 너무 부러웠고, 아빠가 더욱 안쓰러웠다.
그래도 영양분이 잘 공급되어 아빠가 빨리 호전되길 바랐는데,
생각보다 이 경관식 피딩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고, 아빠는 살이 찌기는커녕 너무 쭉쭉 빠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한쪽 팔에는 24시간 내내 TPN 영양수액 주사를 늘 달고 있었다.
아빠가 식사를 못하니 나도 입맛이 뚝 떨어졌다.
특별히 먹고 싶은 것도 없었고, 또 나 혼자만 먹으려니 아빠에게 미안했다.
늘 뚱땡이 몸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때만큼은 나도 살이 점점 빠졌다.
'아빠가 다시 입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입원기간 동안 매일 아침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밤새 아빠가 어땠는지, 컨디션은 나아지고 있는지 나름의 브리핑(?)을 했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병실에 들어왔는데..
옆 환자 간병인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씀하신다.
"아니, 어디 다녀왔어요? 아빠가 콧줄을 뺐어... 이를 어째......"
서둘러 커튼을 젖히니,
너무나 편안 표정으로 한 손에는 쭉 뽑아낸 콧줄을 쥐고 곤히 자고 있는 아빠.
'하...........................'
'큰일이다.'
콧줄을 다시 끼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걸 지켜보는 보호자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아빠의 코와 목, 기관지로 이어지는 통로는 콧줄로 인해 모두 헐어 있었다.
빨갛게 헐어있는 곳에 또 그 도톰한 관을 끼어 넣어야 하는데,
삽입되는 길이는 무려 60~65cm였다. (상황에 따라 70cm까지도 쑤셔 넣었다. ㅠㅠ)
콧줄을 낀 날에는 어김없이 관에 핏물이나 피딱지가 나왔다.
교체 주기는 한 달이지만, 그 사이에 콧줄을 잡아 빼거나 내시경이라도 하는 날엔 이 고통을 또 겪어야 했다.
"손에 장갑을 끼우셨어야죠!"
담당간호사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환자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에 동의하기는 했지만, 나는 아빠 손을 묶어두고 싶지 않았다.
두툼한 권투 글러브처럼 생긴 장갑을 끼워 연결된 줄로 침대 난간에 손이 묶인 아빠를 처음 봤을 때 무척이나 슬펐다.
한 번은 손을 물수건으로 닦아주려고 장갑을 풀었는데, 불어 터진 손에서 꼬릿 한 냄새가 났다.
얼마나 묶어두고 있었으면 손이 이렇게 불어 터지고 냄새가 날까....
내가 계속 지켜보는 한이 있더라도 될 수 있으면 손을 자유롭게 해 놔야겠다 생각했다.
장갑 글러브도 하나 더 구입해서 깨끗하게 빨아가며 자주 교체하고,
아빠 손도 자주 닦아주고, 될 수 있으면 시원하게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아빠에게도 절대 콧줄에는 손대지 말라고 신신당부해 놓고 나도 잘 지켜보면서 그렇게 한동안은 잘 지냈다.
이 날도 아빠가 잘 주무시고 계셨고, 잠시 엄마랑 통화를 위해 자리를 비웠는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잠결에 콧줄 때문에 숨이 막혀 쓱 잡아당긴 듯했다.
"아빠, 내가 콧줄 뽑으면 안 된다고 했지?"
"이제 어떡해! 밥도 못 먹고 약도 못 먹고.. 저거 다시 껴야 하는데 진짜 큰일이다."
괜히 속상한 마음에 아빠에게 잔소리를 했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울먹거리며 미안하다는 아빠....
'에휴... 아빠가 무슨 잘못이 있으랴... 내 탓이지.'
'괜히 장갑은 풀어놔서 아빠에게 고통을 준 내가 잘못이지..'
한참 뒤, 담당선생님이 오셔서 콧줄 끼기를 시도하신다.
"어느 쪽 코로 넣어 드릴까요?"
"이쪽저쪽 다 헐어서 아무 데나 넣으셔도 똑같을 것 같아요."
담당선생님은 꾸역꾸역 콧줄을 넣어본다.
"환자분. 꿀꺽해 보세요. 꿀꺽."
아빠는 너무 괴로워하며 연신 기침을 하고,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발버둥 친다.
아....... 보는 게 더 괴롭다.
수십 번 시도한 끝에 겨우 콧줄 넣기에 성공한다.
아빠 눈은 시뻘게지고, 들락날락거린 관 때문에 가래가 너무 많이 생겨 숨쉬기도 힘들어했다.
숨쉬기가 힘들어 헐떡헐떡 거리는 순간에도 콧줄은 들락날락 아빠를 더 괴롭힌다.
이제는 관이 잘 들어갔는지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고 한다.
매일 엑스레이를 찍고 있는데... 이렇게 찍어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엑스레이를 찍고,
또 결과를 듣는 것까지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식사를 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지난번 넣은 콧줄도 자리 잡는데 한참 걸렸는데...
새로 삽입된 콧줄도 당분간 얼마나 아빠를 괴롭힐지 또 눈앞이 캄캄하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의료진분들이 환자 콧줄 넣기 체험을 하신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생각보다 너무 고통스러웠던 경험이라며 환자가 많이 힘들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또한, 콧줄을 직접 경험했던 환자분들의 후기를 보니
차라리 식사를 안 할지언정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최악의 고통이라고 표현해 주셨다.
짜증 날 정도로 무조건 참고 보는 아빠였기에 지금까지 이걸 참아내고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니,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내 마음대로 콧줄을 빼줄 수도 없는 이 현실이 참 잔혹했다.
'이 짜증 나는 콧줄을 언제까지 이렇게 고통스럽게 끼고 있어야 하나..........'
코에 대롱대롱 달려 있는 콧줄은 식사를 하지 않을 때엔 아빠의 손이 잘 닿을 수 없도록
얼굴에 테이프를 이용해 붙여 뒀다. 이 모습이 참 애처롭고 서글프다.
이후로도 아빠는 이 고통스러운 콧줄을 1년 2개월이나 끼고 있었다.
이 콧줄 때문에 응급실에 수십 번 방문하고,
외래에서 4시간씩이나 콧줄 삽입을 시도하다 쓰러지고,
호흡곤란이 와서 119에 실려가기도 했었다.
먹지 못하는 고통이란..
감히 상상조차 어렵다.
맛있는 음식을 즐겁게 잘 먹을 수 있고,
그런 시간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참 크나 큰 행복이다.
그런 시간이 다시 올까....
아빠가 단 한 번이라도 입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
2024.11.16 - [아프지마요] - 미루지 말고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운전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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