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나는 뚜벅이였다.
운전면허는 일찍 취득했지만, 운전대를 쉽게 잡지 못했다.
워낙 운동신경이 바닥이기도 하고,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여 운전을 할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수도권에 살고 있어 잘 발달되어 있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도 없었기에 뚜벅이 삶이 늘 익숙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빠가 운전하면 옆 보조석에 앉아 맛있는 걸 먹으며 종알종알 대화하는 드라이브가 참 좋았다.
명절날 외할머니댁에 다녀올 때에도 차가 11~12시간씩 밀려도 아빠는 짜증 한번 내지 않고 든든하게 운전을 해주셨다.
"아빠, 많이 힘들지? 너무 힘들면 쉬었다 가."
"에이~ 뭐가 힘들어. 피곤하면 좀 자. 아빠가 도착하면 깨워줄게."
아빠의 따뜻한 보호 아래 가족과 함께 하는 그 차 안에서의 좋았던 시간이 내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다.
내가 다시 운전을 배워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건, 아빠가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아빠에게 이상 증상이 나타나면서부터 유명하다는 병원 이곳저곳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병원에 갈 때마다 아빠는 식은땀도 많이 흘리고 다리가 휘청휘청 너무 힘들어하셨다.
한 번은 지하철을 탔는데, 아빠를 보신 어떤 분들이 어서 앉으라고 자리 양보를 서슴지 않고 해 주셨다.
'내가 운전을 잘할 수 있었다면 아빠가 이렇게 힘들게 병원에 다니지 않을 텐데...'
아빠가 얼마나 약하고 힘들어 보였으면 타인이 저렇게 바로 배려를 해주실까 하는 마음에...
너무 속상하고 슬펐다.
운전이란 게 하고 싶다고 하루아침에 덜컥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진작에 배워두지 않은 걸 참 많이 후회했다.
그래도 그렇게 후회만을 하고 있을 수는 없기에 운전연수 전문학원을 서둘러 등록했다.
만약 아빠가 건강했었다면 운전도 가르쳐줬을 텐데.. 생각지 못한 곳곳에서 아빠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학원에 등록하자마자 냉큼 전화가 왔다.
바로 연습 일정을 잡고 틈나는 대로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연습해도 너무 어려운 운전... ㅠㅠ
'제발 좀 아빠 병원에만 모시고 다닐 수 있게 실력 좀 늘어라........'
한 방송에서 어떤 연예인이 운전도 체력이 있어야 한다더니..
운전에 집중하고 나면 진짜 어깨 근육이 욱신욱신하고, 차가 밀리기라도 하면 끼어들기 걱정부터 앞섰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차가 덜 많은 시간대에 나와 무조건 차를 운행해 보려고 애썼고,
주말에는 아빠가 다니는 대학병원까지 왔다 갔다 연습하였다.
연습 덕분인 걸까...
조금씩 두려움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제법 요령도 생기면서,
어느 순간부터 아빠 병원을 모시고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휠체어를 싣고 아빠와 가고 싶은 곳에 갈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물론 큰 사고나 딱지 한번 없이 안전한 운전 실력으로 말이다.
조금 더 일찍 배웠으면 좋았겠지만 뒤늦게라도 운전을 배웠기 때문에..
침대에 갇혀 있는 아빠를 잠시나마 바깥세상으로 이끌 수 있었다.
응급상황이 생겼을 때에도 바로 내가 차를 몰고 응급실로 갈 수 있었고,
장시간 병원 대기 상황에서도 차 안에서 아빠를 뉘어 쉴 수 있게 할 수 있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석션기 등 가져가야 할 짐이 산더미였는데..
이젠 차 안에 실어 놓고 급할 때 차 안에서 석션도 하고,
병원을 오가는 긴 시간 동안 아빠가 배고프지 않게 차 안에서 피딩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아빠가 내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편하게 계실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운전 말고도.. 미리 했었으면 좋았을걸 하는 후회 가득한 일들이 참 많았다.
정작 나에게 꼭 필요한 중요한 걸 하지 않고, 늘 엉뚱한 것에만 시간을 쏟고 살았던 바보였다.
미루지 말고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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