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빠에게 아직까지도 가장 큰 죄책감을 가지게 된 사건이 있다.
바로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던 일이었다.
아빠가 이유 없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대학병원의 진료를 받게 되었고..
해당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면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이상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대학병원에서는 약을 계속 복용하면서 추적 관찰을 해보자고 하였고..
집에서는 매일 걱정만 쌓여가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당시 나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엄마에게만 아빠를 맡기고 집을 나설 수도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빠와 늘 함께 했던 가까운 친척에게 도움을 청했다.
묻지도 않고 급히 집으로 와주셨고, 아빠의 달라진 모습에 요양병원 입원을 권유하셨다.
그 당시 엄마와 나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아빠를 지키면서 버텨내고 있었다.
주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 간병은 너무 힘들다고,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을 보내라고 말씀해 주셨다.
'하....... 진짜 어떡하지...'
결국 어른들의 말씀을 듣고 이런저런 검색을 통해 요양병원을 고민하게 되었고,
집과는 많이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요양병원 한 곳에서 입원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일단 병원이기에 급박한 상황이 생기면 대처가 가능하고, 입원하면서 현재 새로 복용 중인 약도 조절해 보고,
또한 재활도 활성화되어 있는 곳이라기에 아빠가 안정되길 바라며 엄마와 입원을 결정하게 되었다.
처음 환자 입원에 대해 문의를 하니, 너무나 친절한 목소리로 자세하게 상담을 해주셨다.
두어 달 정도 재활을 하면서 약 조절도 받아보자는 결심을 하고, 아빠의 요양병원 입원을 서둘러 진행하였다.
한 번도 아빠와 떨어져 본 적이 없는데... 아빠의 짐을 싸면서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정말 너무 힘들었다.
코로나가 심했던 당시에는 처음 3일을 독방에서 격리를 한 후에야 일반병실로 이동할 수 있다고 하였다.
3일 동안 간병인을 고용하던지, 가족이 상주 보호자로 들어가던지 선택을 해야 했는데..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가족 중에 간병을 해본 사람이 없어..
전문 간병인을 쓰는 것이 낫겠다는 주위의 조언으로 간병인의 고용을 결정하고,
어렵게 급히 한 분을 구해 아빠의 입원을 준비하였다.
아빠가 몸이 불편해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병원에 모시고 가기 위해, 프리미엄 블랙 택시를 이용해 병원에 갔다.
병원 가는 길 내내 마음이 서글퍼졌다.
잠시 동안만 입원을 생각한 건데, 왜 영원히 헤어질 것 같은 느낌인지....
가까운 거리였기에 금방 병원에 도착했고, 병원 입구는 깨끗하고 조용하였다.
접수창구로 가서 환자 성명을 이야기하니, 간호사 한분이 내려왔고 바로 아빠를 데려갔다.
간호사분이 이끄는 대로 함께 병실로 들어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니..
뭐랄까... 참 말로 표현하기 힘든 많은 감정들이 올라왔다.
아무것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많은 일들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났고,
뭔가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상황이 너무 벅찼다. 심장이 두근두근 터질 것 같았다.
아빠를 보살펴주실 모든 분들께 예의를 갖춰 인사드리고, 아빠를 잘 부탁드린다고 수차례 당부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요양병원은 정말 환자를 잘 보살피고 간호해 주는 병원인줄 알았다.
(물론 온 정성을 다해 환자를 보살펴주시는 요양병원도 많다는 걸 안다.
하지만 적어도 아빠가 입원했던 요양병원만큼은 지금까지도 나에게는 너무나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빠를 그렇게 보내놓고.. 엄마와 나는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유난히 아빠와의 정이 돈독해서인지, 집에 아빠가 없으니 너무 이상하고 미쳐버릴 것 같았다.
엄마도 이미 한계가 온 듯 눈이 풀려 벽에 머리를 기댄 채로 한참을 허공만 쳐다보셨다.
그렇게 밤새 뜬 눈으로 지새우고 정신없이 출근을 했는데.. 요양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ooo 씨 보호자 되시나요?"
"네. 무슨 일이신가요?"
"담당 의사인데, 환자분이 식사도 거부하시고 마구 소리 지르시고 난리가 났어요."
"네?????"
"아무래도 주사로 진정제를 계속 투여해야 할 것 같은데, 동의를 받고자 전화드렸습니다."
"하................"
"계속 진정제를 투여하면 증상이 더 악화될 수도 있고, 잘못하면 돌아가실 수도 있는 점 미리 알려드립니다."
........................................................
...................................................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뭐?? 죽을 수도 있다니..... 그런데 왜 약을 투여한다는 것인지...... 그게 병원에서 할 말인가?'
나는 눈이 뒤집혀서 급하게 휴가를 내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아무대로 아빠 퇴원시켜야 할 것 같아!!!!!"
집에 도착하자마자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 통화내용을 알렸고, 아주 큰 고민 속에 빠졌다.
아빠를 퇴원시켜야 할 것 같은데, 당장 대책도 없고 이를 어쩌지....
머릿속이 하얘지고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차에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병원이었다. 또다시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더니 요양병원 원무과장이란다.
"환자분을 빨리 퇴원시키시죠. 정신병 있으신 거 아닌가요? 숨기시고 입원하신 거 아닌가요?"
"네??? 그럴 리가요. 집에서는 안 그러셨어요. 그런 분 아니에요."
"빨리 퇴원 수속하시고, 다른 병원을 가시던지, 정신병원에 입원시키시죠. 아니면 경찰도 부를 예정입니다."
"아니. 과장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까지 하시나요? 병원이 맞나요?"
"아니.. 그러니깐 빨리 퇴원시키세요. 정신병원 몇 군데 추천해 드릴게요."
"최대한 병원에 빨리 갈 테니, 가서 뵙죠."
너무너무 화가 났다. 원무과장이란 사람은 막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처음 입원 전 상담할 때와는 다른 병원의 또 다른 모습에 너무 당황스럽고 울화가 치밀었다.
환자의 상태를 이해하고 환자의 치료와 회복을 돕는 요양병원이 아니었다.
그저 조용하게 장기간 돈벌이가 되어줄 환자가 필요한 병원이었다.
"엄마, 도저히 안 되겠어. 내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아빠를 책임져야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그래. 얼른 가자."
정신없이 급하게 병원에 가니,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아빠 퇴원 준비를 다 마쳐놓았다.
(나중에 간호사분께 이야기를 들으니.. 가족이 온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제야 아빠는 옷도 잘 입고,
밥도 잘 먹는 등 많은 걸 협조해주셨다고 한다.)
저 멀리 간이침대에 누워있는 아빠에게 뛰어갔다.
"아빠.... 나야. 나 왔어. 많이 무서웠지?"
"왜 이제 왔어........."
(아빠의 볼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이틀 사이에 부쩍 더 마른 아빠의 모습을 보며 나도 아빠와 함께 울음이 터졌다.
아빠는 지독한 약부작용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래서 더 가족의 보살핌이 필요했을 순간이었는데......
낯선 환경에 갇혀 있었고.. 주위에 모르는 사람들 투성이니 너무 공포에 떨었던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자 직원 여러 명이 아빠 팔다리를 붙잡고 묶어 두고 진정제를 막 투여하기도 했단다.
얼마나 공포스럽고 무서웠을까... 순간 아빠는 어딘가로 붙잡혀 온 거라고 착각을 했던 것이었다.
아빠는 살기 위해 소리 지르고 다급하게 가족을 찾았었는데, 사람들은 그런 아빠를 정신병에 걸렸다고 해버렸다.
너무너무 가슴이 찢어졌고... 해당 요양병원의 조치와 태도에 치가 떨렸다.
그 와중에 원무과장이란 사람이 실실 웃으며 나온다.
"아니. 어떻게 환자에게 그런 말을 하실 수가 있어요? 정신병원을 보내라뇨. 네?"
"너무 상황이 급박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경찰 부른다고 협박하시고.. 진짜 해도 해도 너무 하시네요."
"병원 규칙 상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라, 일단 병원비를 계산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아빠에게 갔다.
"아빠... 나 왔어. OO 왔어. 이제 걱정하지 마."
"응. 빨리 집에 가자."
엄마와 상의 후 아빠를 집에 모셔가기 전에 이 약의 부작용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을 처방해 준 해당 대학병원 응급실을 가보기로 결정했다.
아빠의 몸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고, 요양병원에서 진정제를 얼마나 투여했는지 몰라 불안하기도 했다.
입원기간 동안의 의무기록 사본을 챙겨 서둘러 사설 구급차를 불러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동했다.
아빠는 내 얼굴을 한번 쓱 보더니 안심이 됐는지 그제야 잠시 잠이 들었다.
'얼마나 고통 속에서 힘이 들었을까..... 아빠.. 너무 미안해. 내가 몰라도 너무 몰랐어.'
워낙 환자가 많기로 유명한 대학병원이다 보니,
응급실에서 7시간을 꼬박 기다리고 대기한 후에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결론적으로는 약부작용이다 보니, 꼭 필요한 약은 감량하고 나머지 약은 복용 중단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제일 빠른 날짜로 담당 교수님의 외래를 예약해 주셨다.
퇴원하고 나오니 벌써 밤이 되었고 공기가 차가웠다.
친척들은 아빠를 위해 7시간을 함께 응급실 앞에서 기다려주셨다.
엄마가 아빠에게로 달려왔다.
"OO아빠... 많이 힘들었지?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아빠는 엄마와 친척들을 보고 안심이 됐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울먹 말했다.
"왜 이제 왔어....... 거기 사람들이.......... (울먹울먹)"
서둘러 차에 아빠를 태우고 배고팠을 아빠에게 빵을 주니 너무 맛있게 잘 드셨다.
그리고는 서러움에 북받친 목소리로 종알종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신다.
집에 오니 벌써 자정이 넘어간다. 집에 들어온 아빠는 환하게 웃는다.
(지금까지도 그 당시의 아빠가 안도하는 미소를 짓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외삼촌과 외숙모가 집에 와주셨다.
외삼촌은 아빠 씻는 걸 도와주시고, 외숙모는 엄마를 다독여 주신다.
이래서 가족이 곁에 있어야 하는구나.....
요양병원에서 챙겨 온 짐을 정리하면서 작은 메모지 한 장을 발견했다.
이게 뭐지.... 하면서 펼쳤는데, 익숙한 아빠의 글씨가 보였다.
글을 읽는 순간 나는 격해진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마누라 OOO
010-****-****
사랑하는 우리 가족
......................................
.............................
아빠는 진정제로 희미해져 가는 기억 속에서도..
가족을 잊지 않으려고 계속 생각하며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빠... 미안해.....'
크나 큰 죄책감이 몰려왔다. 심장이 쥐어 뜯기는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약 3일 동안의 지옥 같은 경험을 했다.
이 경험 때문에 나는 아직까지도 아빠에게 큰 죄책감을 가지고 있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앞으로 절대 요양병원에는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내가 곁에서 아빠를 지켜주겠노라고 굳게 결심을 했고, 그렇게 나는 아빠와 지금까지 함께 잘 지내고 있다.
나중에 외래에서 교수님께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더니..
아무래도 약이 뇌의 어딘가를 탁 건드려 이상 증상이 나타났고, 또한 약부작용도 심하게 겪었던 것 같다.
부작용을 일으켰을 것으로 예상되는 약은 중단하고, 다른 약은 감량한 용량으로 지켜보자는 말씀을 해주셨다.
(약을 조정한 이후 신기하게도 부작용은 싹 사라졌다. 다만, 약에 시달린 덕분인지 몸은 한없이 더 약해지셨다.)
약부작용을 심하게 겪고 난 이후로 나는 약에 대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약이 너무 무서워졌다.)
약 정보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생길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미리 검토하는 습관이 생겼다.
최근에 일부 병원에서 손발을 묶고 진정제 과량 투여 등으로 환자가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어쩌면 우리 아빠도 같은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했다.
손발이 묶이고, 진정제를 마구 투여하는 상황 속에서..
아빠는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신력으로 버티면서 발악을 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살았고, 그 덕분에 나는 지금의 아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이 사건 이후로 아빠는 블랙 택시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타지 않으시려고 한다.
이상한 곳으로 데려갈까 봐 무서우신가 보다. 너무 미안해졌다.)
'아빠, 온 힘을 다해 버텨줘서 너무 고마워.
절대 다시는 그곳에 보내지 않을 테니, 내 옆에 건강하게만 있어줘.
아프게 해서 너무 미안해. 앞으로 항상 내가 지켜줄게.'
2024.11.09 - [아프지마요] - 아빠의 빈자리 그리고 뒤늦은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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