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아빠가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진다는 연락을 받았다.
코로나 상황이라 상주 보호자는 1명밖에 있을 수가 없고,
보호자 또한 코로나 검사를 하고 음성 확인을 받아오라는 병원의 안내가 있었다.
무기력함 속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던 나는 전화를 받고 약간 흥분이 되었다.
'이제 아빠를 만날 수 있다...!'
일단, 나는 직장에 다니고 있어 처음 며칠은 엄마가 병원에 상주하기로 하였고,
그 이후엔 내가 가족돌봄 휴직을 통해 상주 보호자로 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직장 생활 17년 만의 첫 휴직이었다.
엄마가 병원에 들어가 있는 동안 수시로 전화를 하며 아빠 상태를 확인하였다.
"엄마, 아빠는 좀 어때?"
"몰골이 말이 아니지 뭐... 일어날 수 있을지 너무 걱정이 된다.
그리고 간병 이게 보통일이 아니다....."
그때는 몰랐다. 간병이란 고통의 무게를.....
직장에서 가족돌봄 휴직을 승인받고 바로 짐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대학병원 입원실은 처음 가보았기에 낯선 분위기 속에.. 또 한편으로는 아빠를 볼 생각에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안내받은 병실은 4인실이었고, 적막하고 차가운 공기가 나를 맞이해 주었다.
엄마가 알려준 침상 번호를 보고 서둘러 커튼을 젖히니 야윈 얼굴에 축 늘어진 콧줄을 한 아빠가 보였다.
아빠는 힘겹게 새근새근 겨우 숨을 몰아쉬며 주무시고 계셨다.
'아....... 아빠..... ㅠㅠ'
우리 아빠 맞아.......?
천천히 여기저기 살펴보기 시작했다.
온몸엔 무슨 줄이 그렇게 많은지... 손은 이상한 권투 글러브 같은 걸 끼고 꽁꽁 묶여 있었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처참한 모습에 눈물이 막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신 차리자. 약해지면 안 돼!'
막막한 마음속에 이젠 뭘 해야 하나.. 고민이 생길 때쯤 담당간호사분이 커튼을 열어젖힌다.
"보호자 교대하신 건가요?"
"네. 어머니와 교대했습니다. 제가 앞으로 계속 있을 예정이에요."
"가래 석션 하는 거는 아세요?"
"제가 처음이라 아무것도 몰라요. 죄송한데, 한번 가르쳐 주시면 안 될까요?"
간호사분은 많이 바쁜 시간대이신지, 아주 빠른 목소리로 설명해 주셨다.
'아..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두근두근 떨리기 시작했다.
상주 보호자로 들어가고 보니, 새롭게 배워야 할 것들이 참 많았다.
그중 한 가지는 바로 가래 석션이었다.
아빠는 지병에 따른 합병증으로 흡인성 폐렴 진단을 받았다.
몇 개월 전부터 아빠는 음식을 먹을 때 자꾸 사레에 들려 음식물이 코로 튀어나올 정도로 기침이 심했고,
몸에 기운이 없어 식사를 하자마자 눕기 일쑤였다.
증상에 대한 이상함을 감지하고 연하장애를 의심하고 있을 무렵, 바로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코로나 상황은 어마 무시했다. 우리 이모도 그때 코로나에 걸려 갑자기 돌아가셨다.
장례식조차 할 수 없었던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경험했던 터라 나는 코로나가 너무 무서웠다.
'아빠는 절대 코로나에 걸리면 안 돼...!'
코로나 때문에 연하장애 관련 진료를 예약했음에도 병원에 가기가 무서워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그때 컨디션이 급격하게 안 좋아지면서 음식물이 흡인이 되어 폐에 염증으로 가득 차게 된 것이었다.
코로나가 무서워 적극적으로 진료를 보지 않았던 것을 너무나 후회했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뒤였다.
집에 계실 때에도 아파서 누워 있는 시간이 길었는데, 중환자실에서도 꼼짝없이 누워만 있었고..
이제는 폐렴까지 걸렸으니 생성되는 가래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어떻게 저렇게 뼈만 남은 앙상한 몸에서 먹는 거보다 더 많은 가래가 이렇게까지 나올 수 있을까...
건강한 사람이라면 가래를 잘 뱉어낼 수 있지만, 이미 근육이 많이 소실된 아빠는 가래를 뱉어낼 힘이 없다.
배출되지 못한 가래는 금방 기관지 곳곳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가득 차게 되고,
결국 숨 쉬는 공간을 막아 호흡곤란을 일으킨다.
(그릉그릉... 그르르르릉.....)
아빠의 가래 끓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주전자 물 끓는 소리 같다.
가래를 제때 적절하게 빼주어야 흡인을 막을 수 있고, 정상적인 호흡을 할 수 있다.
서둘러 간호사분이 알려주신 대로 가래를 빼보려고 했는데.. 잘 되질 않는다.
계속 시도해 보지만 영 시원찮다.
어....? 아빠의 숨소리가 이상하다. 몸에 연결되어 있는 커다란 기계가 막 울린다.
다급하게 간호 데스크로 뛰어갔다.
"선생님. 아빠 가래가 너무 끓어요.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잠시 후, 담당간호사분이 오셨다.
멸균 장갑을 착용하고 석션 카테터를 연결한 후, 에어웨이를 끼고 서둘러 가래를 뽑아낸다.
1분 정도 뽑았을까... 석션기를 끄고 아빠를 보니 가래소리는 잦아들고 다시 평온한 표정으로 주무신다.
"너무 죄송한데.. 선생님. 가래 뽑는 거 한 번만 더 설명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저도 너무 바빠서요. 인터넷에 많이 나와 있으니 동영상 찾아서 보세요."
생전 석션이란 걸 들어본 적도 해본 적도 없는 나에게... 막연한 공포감이 밀려왔다.
(나는 지금까지도 이 순간을 잊지 못한다.
대학병원에서 환자에게 해줘야 할 조치를 보호자에게 그것도 동영상을 보면서 배워가며 하라는 그 말이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왕바보 시절이라 그런가 보다 했다.)
가래를 뽑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또 주전자 끓는 소리가 들린다. 하......
내가 울먹울먹 끙끙 대니, 창가 쪽 할아버지 환자 보호자분께서 말을 걸어주신다.
"어머니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많이 해보신 익숙한 솜씨로 드르륵 아빠의 가래를 뽑아주신다.
아빠가 한동안 씻지를 못해서 냄새도 나고 할 텐데 개의치 않고 도와주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엄마가 아무것도 모르는 나 혼자 있는 게 불안해서 옆 환자 보호자분께
우리 딸 오면 많이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신 모양이다.
주변의 보호자분들이 엄마와 나이대가 비슷하셨고,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 응원하며 잘 지내셨던 것 같다.
게다가 우리 엄마는 나와는 달리 모르는 사람과도 금방 친해지는 인싸다.
어찌어찌 이렇게 한고비씩 넘겨가며 나는 아빠를 지켜낸다.
다음 날, 나의 안부를 묻는 직장 동료에 전화에..
"다른 보호자분들은 능숙하게 환자를 잘 케어하는데, 나는 엉망진창이야.
이래저래 못난 자식인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아."
"그분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해온 일들이라 그런 거고, 너는 처음이잖아.
익숙한 게 이상한 거지. 다 잘 될 거야."
과연 그런 걸까... 아빠와 같이 이 병원을 손잡고 나갈 수 있을까......
무섭고 어두운 밤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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