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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마요

환자와 미용실 가기. (거동 불편한 환자의 헤어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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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병원 곳곳을 거닐다.
아빠와 병원 곳곳을 거닐다.

 

 

 


 

 

아빠가 몸이 불편해지고 아픈 이후로 고민이 한 가지 더 늘었다.

바로 쭉쭉 자라나는 머리카락.

잘생긴 아빠의 얼굴이 점점 못난이가 되어 갔다.

 

 

엄마와 고민 끝에 동네의 한 미용실에 가보기로 결정했다.

사실 난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살고 있는 이 동네에서 아빠가 아프다고 입에 오르내리는 게 너무 싫었다.

한 번은 어떤 분이 말실수를 하셨다.

 

"그 집 아저씨 몹쓸 병 걸렸다면서요?"

 

 

그 말을 들은 난 많이 충격을 받았다.

평생 착하게만 살아온 아빠인데, 아빠의 아픔이 남들에게는 입방아 정도의 가십거리라는 게 슬펐다.

그래서 되도록 아빠가 회복될 때까지 그 누구와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운전도 잘 못해서 거동 불편한 아빠와 어디 멀리 갈 수도 없었고,

점점 얼굴을 덮는 머리카락은 더 보기 싫었기에 미용실을 갈 수밖에 없었다.

 

 

 

엄마와 아빠의 양팔을 부축해서 천천히 미용실로 향했다.

어렵게 모시고 간 미용실 문을 여니 부부로 보이는 사장님 2분이 쳐다보셨다.

그런데 순간 탐탁지 않은 눈빛을 느꼈다.

뭘 저런 사람이 왔나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마음이 참 불편했다.

발길을 돌리기도 뭐 하고 해서 아빠를 의자에 앉히고 머리카락을 깨끗하게 잘라달라고 말했다.

 

 

싹둑싹둑.. 위이이잉....

빠른 손놀림에 아빠의 머리카락이 뚝뚝 잘려 나간다.

속이 다 시원했다.

 

 

헤어컷이 다 끝나고 비용 계산 후, 서둘러 아빠를 일으켜 도망치듯 미용실을 나왔다.

아빠의 머리카락이 깨끗해져서 속은 시원했지만, 내 마음은 휑했다.

그렇다.  당시만 해도 난 강하지 못한 완전 초보 간병인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빠의 머리카락은 또 자랐다.

또 오지 마세요라는 미용실 사장님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 더욱 미용실 가는 게 꺼려졌다.

 

'이번엔 저 머리카락을 또 어쩌지....'

 

 

 

이런저런 검색을 하던 중에 아빠가 정기적으로 다니고 있는 한 병원의 지하에 미용실이 있는 걸 발견했다.

 

'어? 병원에도 미용실이 있네.  여기는 환자가 가도 이상하게 보시진 않겠지?'

 

 

 

병원 진료 예약 날, 진료를 마치고 아빠와 지하 미용실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머리 자르시게요?"

 

 

밝은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몸이 불편하신데 컷만 가능할까요?"

"그럼요.  여기 앉으세요."

 

 

사장님이 손이 어찌나 빠르신지 잠깐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아빠의 머리카락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 속이 다 후련하다.

 

 

 

 

아빠의 거동이 더 불편해진 지금은 휠체어를 타고 미용실에 방문한다.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서 아빠의 헤어스타일도 정리할 겸 되도록 꼭 들르고 있다.

의자에 옮겨 앉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기에,

휠체어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컷을 해주시면 안 되냐는 나의 요청을 사장님은 흔쾌히 들어주신다.

그렇게 몇 개월에 한 번씩 전문가의 손길을 빌려 머리카락을 다듬고 있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만져줘야 하는데..

요즘엔 평소에는 내가 직접 아빠의 헤어컷을 담당한다.

왜 예전엔 이 생각을 못했을까.... 싶다.

이발기를 구매해서 인터넷 동영상을 보면서 배웠다.

 

아프다고 머리를 박박 밀어 놓는 건 너무 싫었고, 평소 아빠 스타일대로 잘라주고 싶었다.

위이이이이이잉....

찔끔찔끔 소심하게 머리카락을 쳐낸다.

 

 

 

처음 시도했을 때는 능숙하지 못해 머리카락을 한번 깊게 파먹었다. ㅠㅠ

아빠 미안해....... 처음이라 실수했어.  힝....

 

이것도 계속하다 보니 실력이 늘었다.

지금은 미용실 사장님께서 놀라실 정도이다. 히히-

 

 

 

 

운전에 이어 할 수 있는 게 또 한 가지 생겼다.

 

'아빠, 이제 눈치 보지 말자.  내가 머리카락 예쁘게 잘라줄게.'

 

 

 

 

 

나의 첫 헤어컷. (파먹었다. ㅠㅠ 아빠 미안해.)
나의 첫 헤어컷. (파먹었다. ㅠㅠ 아빠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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