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진 아빠를 처음 마주하던 날.. 아빠가 참 꼬질꼬질했다.
그렇게 씻는 거 좋아하고 깔끔 떨던 아빠인데, 얼마나 찝찝할까...
일단 내과적인 문제가 안정되는 게 최우선이었고, 와상환자여서 샤워실도 갈 수 없었기에
물수건으로 박박 닦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렇게 얼굴과 몸은 화장실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며 수건 수십 번 빨아서 닦인다고 해도,
기름진 머리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당시 난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간병인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여기저기 사귄 주변 환자 보호자분 중 한 분이 의료기상사에 가면
물 없이 감을 수 있는 샴푸가 있다고 알려 주셨다.
'엥? 그런 샴푸가 있었나?'
아빠가 갑자기 아파 정신없이 병원에 입원한 터라 난 아무 정보가 없었고,
제대로 된 간병 물품을 챙기지 못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아빠가 계속 불안정한 상황이라 계속 곁에 있어야 했기에 뭘 알아볼 새도 없었다.
바로 1층에 의료기상사가 있었지만 가지 못하고 가족에게 구매를 부탁했다.
어찌어찌 어렵게 전달받은 물 없이 사용 가능한 샴푸를 들고, 신기함 반 기대감 반으로
설명서에 있는 대로 따라서 아빠의 머리에 조금씩 묻혀 박박 닦아 보았다.
아빠의 표정을 보니 많이 시원했나 보다. 누가 봐도 개운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빠, 시원해? 엄청 시원하지?"
"응."
신기하게 샴푸로 문지르고 대충 물수건으로 닦은 후 손선풍기로 말리니 거짓말처럼 뽀송뽀송해졌다.
물로 제대로 감은 것만큼은 아니지만, 기름기도 없어지고 사람이 달라 보일 정도로 말끔해졌다.
엄마에게 자랑했더니, 아빠 수염도 좀 어떻게 해보란다.
고슴도치처럼 났는데 엄마는 도저히 못하겠다며...
아빠가 평소에도 일회용 면도기를 썼던 게 기억나서 이것도 새로 구입했다.
면도기를 들고 조심스럽게 아빠의 수염을 살살 시원하게 밀었다.
뾰족뾰족 따갑게 올라왔던 수염을 미니 훨씬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이제 좀 봐줄 만하네...'
치아도 걱정됐다.
병원에서는 입안을 닦아주라고 거즈랑 약품, 멸균 생리식염수를 주시긴 했는데..
아빠가 석션에 대한 공포감 때문인지 손가락만 넣으면 깨물었다.
(병원에서는 장갑을 끼고 손가락에 거즈를 감아 닦으라고 했었다.)
한번 제대로 물린 적이 있는데 엄청 아팠기에 나도 손가락을 넣는 게 너무 긴장됐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들러붙은 가래가 있었고, 충치도 많이 걱정도 되었다.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기관 내 삽관을 하셨는데, 그때 치아가 좀 부러지기도 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부드러운 칫솔로 살살 문질러 보기로 했다.
아빠가 양치질하는 걸 좋아했기에 가능할 것 같았다.
칫솔에 멸균 생리식염수를 살짝 묻혀 꼭 짜서 살살 문질러 본다.
다행히 아빠가 입을 잘 벌려 주었다.
덕분에 입천장에 들러붙은 가래와 잇몸 여기저기를 닦아낼 수 있었다.
환자의 구강을 케어하는 용품도 참 다양하다.
거즈를 이용한 방법도 있지만, 석션 칫솔 및 스펀지 칫솔, 구강 면봉 칫솔 등도 있다.
- (석션 칫솔) 칫솔과 석션기를 연결하여, 칫솔질하면서 생기는 침 등을 즉시 석션할 수 있다.
- (스펀지 칫솔) 부드럽게 잇몸과 입천장, 혓바닥 등을 잘 닦을 수 있다.
- (구강 면봉 칫솔) 큰 면봉처럼 생겨 스펀지 칫솔처럼 사용하면 된다.
주의할 사항으로 멸균 생리식염수나 처방약, 가글액 등을 사용할 경우,
반드시 용액을 묻힌 후 손으로 꼭 짜주어야 흡인을 막을 수 있다.
폐렴 환자는 구강 케어가 무척 중요하다.
입 안의 세균이 언제든지 폐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많이 신경 써주어야 한다.
이렇게 평소에 관심 있게 보지 않았을 뿐.. 찾아보면 간병에 필요한 좋은 제품들이 참 많다.
간병도 장비 빨(?)이다.
앞으로 일거리가 또 늘었지만.. ㅋㅋ
그래도 행복하다.
아빠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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