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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마요

재활을 시작하다. (요양병원이 아닌 집으로 꼭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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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첫 재활 <경사대>
아빠의 첫 재활 <경사대>

 

 

 


 

 

아빠의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으로 119에 의해 응급실에 실려오고,

소생실을 거쳐 중환자실과 일반병실로 옮겨지면서 당장 하루하루 버텨내기도 벅찼다.

매일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이벤트도 많았고, 간병이 처음인지라 시행착오도 많았다.

불안하고 초조한 날이 계속 됐다.

 

 

어느 날 담당 주치의가 와서 너무도 당연하단 듯이 물어본다.

 

"퇴원하게 되면 요양병원으로 가실 거죠?"

"네???"

 

 

당시 이곳 체계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했던 난 담당 주치의의 질문이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아빠가 나으면 당연히 집에 갈 생각만 했지, 다른 곳으로 전원을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빠가 입원했던 상급종합병원은 어느 정도 환자가 이벤트가 없어졌다 판단되면 바로 전원을 권유했다.

여기저기 주의 깊게 살펴보니, 다른 환자분들은 재활병원이나 요양병원 등으로 전원을 하셨다.

 

'아.... 완쾌가 될 때까지 병원에 입원하는 게 아니었구나.'

'어느 정도 목숨만 붙어 있으면 전원을 가게 되는구나..'

 

 

 

고민이 깊어졌다.

난 이미 요양병원에서 한번 크게 데인 상태라 절대 그곳에 아빠를 다시 보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이런 상태의 아빠를 집으로 무리하게 모시고 가는 것도 겁이 났다.

당시 아빠는 목도 못 가눌 정도로 와상이었고, 몸에 줄도 많이 달려 있었다.

그날 하루종일 고민 끝에 아빠를 집에 모시고 가려면 일단 어느 정도 재활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엄마와 상의하고, 담당 교수님께 재활의학과 전과를 요청했다.

입원하고 있었던 호흡기내과에서는 전원이든 퇴원이든 환자를 옮기는 것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있었던 터라 즉시 허락해 주셨다.

다만, 재활의학과에서 받아주실지 한번 확인해보셔야 한다고 하셨다.

 

 

며칠이 지나고 재활의학과에서 담당 교수님과 주치의 분이 병실로 방문해 주셨다.

그 당시 난 아빠가 입으로 먹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너무 컸었던 터라 현재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해보고 싶기도 하고,

어느 정도 몸의 기능 회복을 위한 재활도 받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교수님께서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해보자고 하시고는 전과를 허락해 주셨다.

 

"일단 왔다 갔다 경사대라도 한번 해보죠.  도움이 될 거예요."

 

 

 

그렇게 호흡기내과에서 재활의학과로 전과되었다.

과가 달라지니 병실 이동도 해야 했다.

욕창 매트를 비롯하여 옮길 짐이 산더미였다.

 

'짐 싸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네.... 휴....'

 

 

코로나 시기여서 상주 보호자는 1인만 가능했고, 때문에 혼자 힘들게 병실 이동을 했다.

새로운 의료진들이 또 이것저것 물어본다.

병원마다 다를 수도 있지만, 재활의학과는 보통 최대 입원기간이 3주라고 하였다.

나는 그 기간 동안 아빠가 목이라도 가눌 수 있길 바라고 또 바랐다.

 

 

재활은 4가지로 나뉘었다.

운동, 기구, 연하 재활 및 전기 치료이다.

호흡기내과에서도 참 바쁘다고 생각했는데, 재활의학과에서는 기존 거에 재활까지 더해지니 너무 바빴다.

경관식 피딩, 호흡기 치료, 가래 석션, 욕창 드레싱 등 그동안 해왔던 케어 외에

오전, 오후에 한 번씩 있는 재활을 참석하기 위해 환복, 신발 신기, 콧줄 및 소변줄 고정 등 소소한 케어가 더 많아졌다.

 

재활은 해당 시간을 놓치면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에 그 시간을 맞추기 위해

식사, 석션 시간 등을 다 계산해서 나름대로의 하루 일정을 계획해야 했다.

정말 쉴 틈이 없었다.

 

 

 

아빠가 입원한 상급종합병원은 재활치료실이 참 열악했다.

119에 의해 선택의 여지없이 응급으로 실려온 병원인지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치료사분들도 희귀템이라며 지적하신 모든 기구들이 딱 봐도 너무 노후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회복해서 나가겠다는 일념하에 모두들 안간힘을 쓰며 재활을 하셨다.

 

매일 병실에만 있다가 재활치료실이라는 곳으로 환경이 바뀌니,

아빠도 세상 구경 나온 듯 여기저기 둘러보기 시작하는 등 반응이 많아졌다.

다른 환자의 간병인 분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시고 이것저것 알려주시며, 빠른 쾌유를 빌어 주셨다.

무척 지루했던 병원생활이었는데, 약간의 호기심과 생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직 폐렴이 완치되지 않은 상태의 아빠는 재활치료실에 가는 도중이나 치료 중에 가래가 엄청나게 끓었다.

폐렴 때문에 쏟아부은 항생제와 주변 환자들과의 접촉 때문에 내성균이 생겼는데..

내성균이 생긴 환자에게는 비닐 보호복을 꼭 입으라고 하였고, 한 여름 비닐복은 입은 아빠는 식은땀을 비 오듯 쏟아 냈다.

그렇게 1시간을 겨우 버틴 아빠는 기절하듯 목이 꺾여 버리고,

나는 몸으로 아빠의 목을 뒤에서 받치면서 겨우 병실로 뛰어와 급히 가래 석션을 하고 아빠가 안정되기를 기다렸다.

재활치료실과 병실을 오갈 때, 몇 대 없는 초조한 엘리베이터의 기다림과 이동 시간이 늘 지옥 같았다.

 

 

이렇게 긴장하며 보낸 하루 일과가 끝나면 나는 보호자 침대에 누워 쓰러졌다.  아니 기절했다.

아빠 역시 뻗었다.

재활한다고 매번 긴장하고 힘을 쥐어짜서인지 병실로 오면 녹초가 되어 기절한 듯 주무셨다.

 

그래도 움직임이 많아지면서 한 달 반동안 괴롭히던 변비도 조금씩 나아졌다. (난 기저귀 갈기 지옥이 시작됐다.)

누워만 있다가 정말 오랜만에 앉거나 서기를 해본 아빠의 다리는 갑자기 검붉게 변했다.

놀라서 물어보니 오래 누워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혈액이 돌면서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기분 탓인지 다리에 조금씩 힘도 붙는 것 같았다.

 

 

 

 

 

재활을 시작했다.

아빠와 함께 집으로 꼭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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